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诗意梦境与当代生存——余启平的画

来源:99艺术网专稿 作者:99艺术网专稿 2008-08-17

    余启平的作品,以浓郁的中国传统情调示人,但其实他本人却熟知当代文化,并在1980年代不遗余力地推动中国本土前卫艺术的发展。这种文化背景,与他的作品之间似乎颇多冲突,甚至令人有莫衷一是之感。其实,这正是余启平多向思考的体现。

    作为生长于中国本土的艺术家,他对这块土地的社会、文化、政治、经济的转折性变迁及舒缓搏动,大抵都有自我的切身体验。沧海桑田、昨是今非,正是各方面过于激荡的变动,令他有种种不适之感,这才在往昔与如今之间梦游般逡巡,用诗意来搭建一个宜人梦境,以缓释被当代文化所扰攘的心境。于是,熟悉当下文化,却退守回个人对中国传统文明的追慕之中。而他作品中的人物、小桥流水、逸舍静巷,也其实已不是原生的景观,而是加入了大量的乌托邦式想象,并将个人记忆和形而上思索不动声色地融入其中。

    在1989年的《无题》中,那些高耸入云的烟囱以及惊悸的眼神,是他对工业文明之阴暗力量的集中展现,但手足无措的人们,暗示出了一种对未来发展图景的无可奈何。2007《無言》中,孤独的和尚,念念有词的走在蔽日乌云的驱赶之下,是恐惧还是在逃避……?两边平行对称的红墙伸向地平线的尽头,支撑起这个假想的空间,突兀之感跃然纸上,他的孤独与感伤也明显地流露出来。这种种无奈、感伤,是基于他对当代文明的认识:现代性作为被普遍认可的价值诉求,必然要以主要是诉诸未来而非过去的时间意识为主导,于是,求新、发展等意志是内含于其中的,对往事对古人的爱意,对现代所谓文明的嘲讽也是与之相伴随的。作为一个当代人,他明白这一诉求是大势所趋,无法被逆转的。但作为一个负有历史意识并对传统文明有所把握的人,他又眷恋往昔文明中人与自然的适度关系,以及舒缓、宁静的生活节奏。这一心理,其实并非迂腐,而是有其成熟、全面之处。而且现代性理论中,本就有新保守主义与激进主义之争,正是这种争执,可让现代性保持一种适度的张力。

    余启平的这种折衷意识,在《过去的视线》中得以显征:长幼有序、中西和谐。类似民国期间的江南宅院中,一家老小、兄弟姐妹,虽然西服、长袍、礼帽、马褂杂陈,却并不心存芥蒂而水火不容,反而气氛融洽地共处一室。包括《为谁而唱》,也是众人共处一室,昏暗的灯光下尽情的诵唱着同一个梦想。以墨色为主的调子植入到对往日的追忆中,把正在消逝的过去置换为现象。当然,无论是历史中的民国,还是当下,各种异质文化未必真能如此和谐共处,反而是冲突无处不在。所以,余启平精心绘制出的,是一个象征性的“文化大同”景观,是他内心所憧憬的文化逻辑——在持守农业文明所特有的宁静生活节奏的同时,适度融汇现代文明。但他其实对往昔文化和当代文化的态度也是复杂的。《不明确的夜晚》中,西服领带的成年人沉静地集体观望远窗外的神秘天空,他们在等待,他们希望天空出现奇迹。对这一异质文化的产物,怀揣莫名的情绪——既不热情拥戴,也不明显排斥。《评马会》中,齐楚划一的蓝色中山装所包裹着的农民兄弟们,无不欢悦喜气地品评着眼前披着国企的白马,这种满足与喜悦,这种人民公社式的幸福感,并不能掩饰他们内心的卑微,谦恭的笑声中潜在批判色彩暗藏其中,但以淡泊的情绪基调将其按捺起来。这种若有若无、忽隐忽现的激越与尖锐,让他既非往昔文明的纯然拥护者,但又对其眷恋和玩味不已,种种复杂的心理剪不断、理还乱,正是他的复杂文化背景和折衷心理的体现。

    对往昔淡泊、宁静岁月的眷恋,使他将主要精力置于“怀乡”之中。他不厌其烦地绘制出记忆和想象中的一幅幅乐土,将梦中之乡全面地展开,往昔的时光都被笼罩在温煦宜人的光晕之中。少女、成人、农夫、乡民、士绅、文人、商贾,都各守其隅,各享其乐。同时,他一方面以大量的画幅来绘制种种记忆和想象中的昔日景观,也在其中夹杂不少更具象征性的因素。于是,这种江南传统街巷,既是他追忆往昔宁静、舒缓的农业文明景观的载体,也成为承载他多向思考和体验的媒介。这些多向思考,除了糅合个人成长记忆以及中西方文化的对立外,主要集中于对佛学、禅意的推崇——僧人们在静谧的禅舍、民居中参禅悟道、冥想天地,与世无争,自成一体。

    对余启平而言,经历过文革前后的跌宕起伏,改革开放的文化新潮、1990年代的消费主义、旅居日本后的重新思考……文化范式的频繁转换以及个人活动领域的屡屡迁移,他思想的复杂、折衷在情理之中。但作为一个有浓厚传统情结的当代人,农业文明时代的家园既然已逝,就无法再重现或复制,只能在追忆与想象之中编织一个梦里家乡,与今日的种种都市生存压力相平衡。

        杜曦云
    2008年写于北京

    여계평(余啓平)의 작품을 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짙은 중국전통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작가 본인은 현대 문화를 잘 알고 있고, 1980년대에는 중국본토의 앞선 예술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작가의 이런 문화 배경은 그 자신의 작품과 여러 모로 충돌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일치한 결론을 내릴 수 없을 때도 있다. 사실상, 다변화 사색을 즐기는 여계평의 성격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예술가, 그는 이 땅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의 전환적인 변천과 완만한 박동에 대하여 스스로의 자아 감수를 받아 온 작가이다. 세상이 뒤 바뀌고, 어제 날 옳게 보였던 것이 오늘날 틀리게 보여진다.  요동치는 변동은 그에게 적응할 수 없는 괴로움을 주었다. 몽유병에 걸린 듯이 과거와 오늘 사이에서 주춤하면서, 시적인 감수로 아름다운 꿈의 정경을 그려냈고, 현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착잡해진 심정을 천천히 풀어갔다. 이런 과정을 걸치면서 현시대 문화에 대하여 잘 알게 됐고 개인적으로 중국전통 문화를 추모하고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 개울가를 가로 지른 작은 다리, 안일한 저택과 조용한 거리는 본디의 경관 본색을 떠나 다량의 유토피아 식 상상 요소를 주입해 넣었고, 개인적인 기억과 형이상학적인 사색을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융합시켰다.

    1989년에 창작한 <무제(無題)>를 보면, 우뚝 치솟은 연통과 불안으로 떠는 눈길을 통해 산업 문명 뒤에 숨겨진 음침한 세력을 집중 표달했다.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미래 발전비전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심정을 암시했다. 2007년도에 창작한  <무언(無言)을 보면 고독한 스님이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에 쫓기듯이 중얼거리면서 걷고 있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였을가, 아니면 무엇인가를 도피하고 있는 것 일가? 양변을 평행으로 대칭된 붉은 담벽은 지평선 저쪽으로 길게 뻗어 가면서 가상 공간을 받쳐 주고 있다. 돌올(突兀)한 감수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작가의 고독과 슬픈 심정이 분명하게 노출돼 있다. 이와 같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슬픈 심정은 작가가 현대 문명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나타나 있다. 현대성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가치에 대한 속구를 나타내고 있고, 과거에 대한 시간적인 의식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미래에 대한 속구를 주요 목적으로 한다.  결국에, 새로운 것과 발전 등을 추구하는 의식은 자연적으로 그 속에 포용되어, 과거와 고인(古人)에 대한 흠모의 마음, 현대 문명에 대한 조소 등의 요소를 내 비추었다.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속구”는 이미 사회적인 대세로 되고 있고 더는 역전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의식과 전통 문명에 대하여 자신 있는 작가는 지나간 옛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 안온화고 조용한 생활 절주에 대한 미련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작가의 이런 심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생각에 의해 기인된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성숙성과 전면성에 대하여 표달하는데 있다. 현대 논리 영역을 보면, 신 보수주의와 격진주의간의 분쟁은 지속되고 있으며 이런 분쟁을 통해 현대성은 일정한 정도의 장력을 유지하고 있다.

    여계평의 이런 절충적인 의식은 <과거의 시선>을 통해 어른과 연소자간의 구분, 중국과 서방 문화간의 조화를 그래 내고 있다. 민국시기, 강남의 어느 한 저택 정원에서 가장과 자식들, 형제자매들이 모여 있는 정경, 비록 가족 성원은 양복, 장포, 예모, 마고자 등 서로 다른 차림새를 하고 있었지만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불만 없이 사이 좋게 보내고 있다. 작품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가>에서도 여럿이 광선이 부족한 어두운 실내에 모여서 “동일한 꿈”을 마음껏 부르고 있다. 화면은 검은색을 위주로 사용하여 보는 사람을 지나간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직접 유도하여, 차츰 사라져가는 과거를 현상화 한다. 물론, 이미 지나간 민국시대 혹은 현재에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는 이와 같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여계평이 정성들여 만든 작품은 상징적인 “문화 대동화” 경관을 나타내고 있으며 작가가 내심으로부터 쏠리고 있는 문화적 로직-농촌 문명에 내포되어 있는 조용한 생활절주를 동경하면서 현대 문명을 교묘하게 융합시켰다. 사실상, 작가는 복잡한 마음으로 지나간 문화와 현대 문화를 그려내고 있다. 작품 <불명확한 밤>을 보면, 양복에 타이를 코디한 성년 사나이들이 조용히 모여 앉아 창 밖의 신비로운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고, 하늘가에서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질적인 문화산물에 대하여 형언키 어려운 심정으로 맞이하고 있는 이들은 뜨거운 마음으로 떠받들지도 않았고, 크게 배척하지도 않았다. 작품 <평마회(評馬會)를 보면, 일치하게 남색 중산 복을 차려 입은 농촌 사나이들이 국기를 걸치고 있는 백마 주위에 모여서 일치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백마를 평가하고 있다. 그 시대 특유의 만족감과 기쁨, “인민공사(人民公社)” 식 행복감에 도취된 가운데서도 그들의 내심 속에 숨겨 있는 비천함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고 공손하게 웃는 모습들을 통해 비판의 색채를 비춰 보였다. 다만 담담한 감정으로 표현하여 부풀어 오르는 정서를 억누르고 있다. 이와 같이 있는 듯 하면서도 없는 듯 해 보이고, 나타났다가 다시 숨겨지는 격앙과 날카로움을 통해, 현실과 과거에 대한 갈등으로 하여 겪는 작가 자신의 괴로움을 표달했다. 작가는 과거 문명에만 집착하는 순수한 옛 문화 추종자는 아니 였지만 또 그에 대한 애착을 금치 못했고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착잡한 마음으로 자신의 복잡한 문화배경과 절충해 보려는 심리를 나타냈다.

    옛 것에 대한 담담해진 심정, 조용했던 나날들에 대한 미련, 이런 요소의 영향을 받아 작가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표달하기에 정력을 기울였다. 그는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고 기억과 상상 속에 살아 있는 극락세계의 모습들을 쉼 없이 그려 나갔고 꿈에서 보았던 정경들을 전부 되살려 내려고 애썼다. 지나간 나날들은 따스하고 분위기를 즐겁게 하는 현란한 광선 속에서 하나하나씩 재현되고 있다. 소녀, 성인, 농부, 촌민, 신사, 문인, 장사꾼, 이 모든 개개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영역에서 자신만의 향락을 누리고 있다. 작가는 큰 정력을 들여 기억과 상상 속에 살아 있는 옛 경관을 재현하는 동시에 그림 속에 상징 의미를 가진 요소를 교묘하게 융합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서 강남의 전통 길거리는 그가 과거의 조용하고 안일했던 농촌문화 경관을 회억하기 위해 적용한 캐리어 역할을 했고 작가 개인의 다변화 사유방식과 체험을 담기 위한 매개물로 적용되기도 했다.이런 사유방식을 통해 개인적인 성장경력 및 중서 문화간의 갈등을 혼합 시키는 외에도, 불교 학, 선의(禪義)에 대한  숭배를 나타내기 위해 스님들이 거주하는 조용한 절,민가(民家)의 참선오도(參禪悟道),천지(天地)에 대한 명상, 세상만사에 대한 무관심, 스스로 일체화를 완성하는 과정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그려냈다.

    여계평 자신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전후 변화 다단한 시기, 개혁개방 후 새로운 문화적인 사조(思潮), 1990년대 소비주의, 일본에 거주하면서 다시 다듬어진 사유......등의 문화적인 패러다임의 빈번한 전환과 개인 활동공간의 거듭되는 이동을 경력하면서 자연적으로 복잡하고 절충적인 사유방식을 소지하게 됐다. 그러나, 옛 것에 대하여 깊은 집착을 가진 현대인으로서, 농촌문명 시대의 고향은 이미 지나간 회억으로밖에 남지 않아 중복 재현하거나 혹은 복제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현실로 되고 있다. 다만 추억과 상상 속에서 꿈속에서 그리던 고향산천을 다시 그려내어, 오늘날 도시생존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연결 시켜 상호 평형을 이루고 있다.

        두희운(杜曦云)

    2008년 북경에서

                                                                                     【编辑:霍春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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